동료 개발자들과 글쓰기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글쓰기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것 같은 개발자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블로그 운영에 대해서 생각보다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업무를 하면서 개발자만큼 블로그 포스트를 많이 접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웹 상의 그 많은 개발자들은 뭘 위해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고, 개발자가 블로그를 운영하면 어떤 점이 좋을지 생각해봤다.
1. 글쓰기도 능력이다.
개발자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소스코드를 수정하고, 빌드하고, 테스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이 많다. 기업 수준의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1인이 모든 단계를 담당하는 일은 드물다. 여러 사람이 팀을 이루고, 여러 팀이 시스템의 각 부분을 담당하여 업무를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개발과 관련된 커뮤니케이션 중에 '문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은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메일(email)은 물론 슬랙(Slack)이나 깃허브(Github) 등의 협업 플랫폼들이 많이 보급되면서 개발자들이 같은 공간에 있을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같은 국가, 같은 시간대에 없어도 서로 협업을 하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형태는 매우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다.
업무에서 문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이 높아진만큼 글쓰기가 평판에 미치는 영향도 나날이 커가고 있다. 이메일로 협업을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요구사항과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메일에서도 횡설수설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와 후자를 비교했을 때 누구와 일하기 편한지 생각해보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 '다독, 다작, 다상량'이 필수라고 했다. 업무를 하면서 글을 많이 읽고 특정 주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우리 개발자들이 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많이 써보는 것이다. 그 연습장으로 삼을 수 있는 게 바로 '블로그'다.
2. 정리하며 이해할 수 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 특정 주제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공학에는 '고무오리 디버깅'이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비전문가나 심지어 고무 오리 같은 무생물을 앞에 두고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다 보면 스스로 해결책을 얻는 경우가 많다는 데에서 유래한 방법론이다. 다시 말해 어떤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행위 자체가 그 문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방법이 된다는 말이다.
블로그 포스트를 작성할 때 가상의 독자에게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설명하고자하는 내용에 대해서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글을 작성하다 보면 마치 고무 오리에게 설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 설명하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좀 더 체계적인 이해를 얻게 된다.
추가로 기존에 잘 못 알고 있던 내용을 정확하게 알게되는 경우도 있다. 글을 작성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잘 못 알고 있던 사실 관계가 바로 잡히는 경우가 많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좀 더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연습은 결국 그 주제에 대해서 좀 더 높은 수준의 이해도를 끌어내게 된다.
[광고]
3. 나중에 찾아보기 좋다.
블로그 포스트를 작성할 때 가상의 독자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글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나중에 이 포스트를 읽을 대상에는 '미래의 나'도 포함되어 있다. 업무를 처리하면서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예전에 비슷한 문제를 본적이 있었는데..."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한 내용을 어딘가에 적어놓지 않았다면 결국 똑같은 '삽질'을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블로그에 그 내용을 정리해 놨다면 비슷한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렴풋이 기억나는 몇 개의 키워드를 블로그에 검색하면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 키워드를 구글에서 검색하는 것과 블로그에서 검색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비슷한 문제를 남이 정리한 것과 내가 정리한 것도 큰 차이가 있다. 내가 정리한 글은 남이 정리한 글보다 더 쉽게 이해된다. 또 글을 읽다 보면 글을 작성하던 그 당시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를 수 있다. 비언어적인 경험도 블로그 포스트를 읽으면서 재생될 수 있는 것이다.
블로그를 이용하면 나의 기억 속에는 '지식의 인덱스를 저장'하고, 지식의 상세 내용은 블로그에 유지하면서 경험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4. 블로그는 개발자 개인의 브랜드다.
이제 평생 직장이란 말은 없다. 어떤 회사를 다니느냐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개인 브랜드가중요하다'라고 할 수 있다.
개발자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고, 프로그래밍 대회에 나가서 입상할 수도 있으며, 개인 프로젝트로 성공적인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를 런칭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쉬운 브랜딩 방법은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다.
구글링을 하다보면 특정 주제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블로그를 만나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HBase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글링을 하면 특정 블로그의 글이 계속 검색된다. 결국 그 블로그는 HBase라는 주제에 특화되어 있고, HBase라는 주제에 대해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 훗날 HBase 전문가가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그 블로그가 생각나게 된다.
최근에는 경력직 채용을 할 때, 블로그나 SNS, 유튜브 활동 내역에 점수를 주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훌륭한 기술 블로그는 개발자의 커리어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5. 다양한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
블로그는 부가적인 수입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애드센스(Adsense)' 같은 배너 광고 플랫폼을 수입을 창출 할 수 있다. 블로그 포스트의 상단, 하단 혹은 사이드바에 광고를 달아놓으면 블로그 포스트를 검색해서 들어온 사용자들에게 적당한 광고를 노출시켜준다. 사용자가 광고를 클릭하거나 많은 수의 광고 노출이 이뤄지면 애드센스는 블로거에게 일정 정도의 광고 수익을 나눠준다. 물론 프로그래밍 관련된 분야의 클릭 단가가 높지는 않지만 아메리카노 한잔 가격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다.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특정 주제에 대한 인지도를 얻게 되면, 그 분야에 대한 강연 요청이나 기고 요청을 받을 수 있다. IT 잡지나 언론사 등에글을 써주고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인지도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쏠쏠하게 수입을 얻을 수 있다.
가장 흔한 부수입은 번역 요청이다. 외국에서 핫한 기술 서적을 국내에도 번역하여 출판하고자하는 출판사가 있을 때, 번역을 어디에다 요청하겠는가. 그 기술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을 법한 전문가를 찾게 될 것이고, 글 솜씨도 어느 정도 검증된 사람이라면 더 선호하게 된다. 출판업계에서 수준 높은 번역가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어 왔다.
개발자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면 좋은 점을 요약하자면,
1. 글쓰기도 능력이다.
2. 정리하며 이해할 수 있다.
3. 나중에 찾아보기 좋다.
4. 블로그는 개발자 개인의 브랜드다.
5. 다양한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
나열해보면 이런 장점들이 있겠지만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 일 것이다. 키보드를 두드려 만드는 텍스트라곤 구글 검색어와 소스코드가 대부분인 개발자에게 어떤 주제를 던져주고 "이 글에 대해서 글을 써봐"라고 말한다면 많은 경우 멘붕에 빠질 것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는 개발자라면 일필휘지로 명문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한 글자도 못 쓴 채 멘붕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블로그 운영에 앞서 다른 개발자 블로그를 벤치마킹 하는 것도 좋다. 깃허브(Github)에 개발자 블로그를 정리해 놓은 리파지토리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또 개발과 관련된 고퀄리티 글을 모아둔 깃허브 리파지토리도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개발자라면 망설이지 말고 블로그를 운영하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