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이그젬션 -고소득 직장인 주 52시간 제외?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미국에서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이라고 부르는 제도입니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은 연간 임금소득이 일전 수준 이상인 근로자에게 연장근로수당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근로제도입니다.
근무시간에 비례해서 업무의 성과나 질을 측정하기 어려운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고위관리, 행정직 종사자들의 경우 근무시간이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을 지불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입니다.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화이트칼라 이그젬 제도의 대상은 연봉 10만달러(약 1억 2000만원)이상인 사무직 근로자입니다. 이들은 법으로 정해진 근무시간 이상으로 근무하더라도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없습니다. 대신 추후 업무 성과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성과급과 비슷한 추가 급여를 받게 됩니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취지
각국의 노동법은 기업에 비해 협상력이 낮은 개별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데요. 여러가지 보호장치들이 현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근로자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상황에서 이런 규제를 관리직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화이트 칼라 노동자에게도 동일하게 규제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고려해서 미국에서는 소수의 고소득 노동자에게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을 본딴 ‘탈시간급제’를 2019년에 도입했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는 일주일 최장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규제한 근로기준법이 너무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서 관련 규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다방면으로 연구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주 52시간의 틀에 고정된 근로시간 규제가 기업들의 생산성을 악화시킨다는 우려가 있는데요. 스타트업이나 게임 업계에서는 정해진 시간내에 프로덕트를 완성해야해서 ‘크런치모드’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의 질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시간내에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어 결국 기한내에 뭔가가 나온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의 후보시절 120시간 발언 논란을 들여다봐도 ‘크런치 모드’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무튼 고소득자의 평가기준을 근무시간 중심에서 성과중심으로 바꾸고, 업무 수행에 유연성을 부여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려야한다는게 이 제도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기업과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 도입의 우려
하지만 우려도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초과근무 수당이 아닌 성과급으로 보상받는 것은 매우 이상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환경에서 제대로 동작할 지는 의문입니다. 아마도 도입되면 포괄임금제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업에서 직원에 대한 성과 평가와 보상을 제대로하는지 감독하지 않으면 성과급은 없겠죠.
게다가 획일적으로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인수위에서 주장했던 ‘스톡옵션을 받기로 한 사람과 일반적인 근로자가 동일한 규제를 받는것은 불합리하다’라는 것과 맞지 않습니다. 스톡옵션은 대부분 낮은 급여를 보완하기 위해 지급하는데, 연봉으로 기준을 삼으면 정작 스톡옵션을 받는 스타트업은 대상에서 제외되고 급여 비중이 높은 대기업 사무직이나 전문직 종사자들만 대상이 됩니다. 이러면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의 도입 취지와 맞지 않게 됩니다.
아마 연봉 1억을 기준으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하면, 삼성전자나 SKT,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과 금융권 직원이 대거 포함됩니다. 근무 시간 예외를 대폭 허용하는 쪽으로 제도 개선이 일어난다면 야근이 늘어나게 되는데요. 구로의 등대가 다시 켜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